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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며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좋은 기회에 Goldman Sachs에서, 또 DFDF에서 인턴을 하면서 정말 복에 넘치게도 그냥 주어진 일을 바쁘게 했던 것 같다. 문득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던 날. 정말 간절히도 이 기회들을 원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한 정말 무지했던 나는, 그저 바쁘게 사는 내 모습에 취해 있었단걸 깨달았다.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스타트업의 한복판에서 힘들어도 고생이 아닌 보람이라고 여겼던 그때의 열정, 그냥 정말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 때의 내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를 비추었다. 그때 내가 쫓던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쫓기기조차 포기한 채 공허함 속에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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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 (IB)을 준비하며 Goldman Sachs 정대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IB가 좋은 이유는 바쁘게 살아갈 수 있어서 또 끊임없는 배움의 기회가 있어서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그 '배움의 기회'라는 말에 꽂혀 나도 정말 평생 그 기회를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생각했다. 그렇게 금융을 해야했고 그러니 CFA를 취득해야 했고. 바쁘게 살아야만 했다.
J.P. Morgan, Bank of America, SMBC 정말 다양한 투자은행 면접을 봤었다. Coffee Chat은 물론 하루동안 1000개의 문제를 준비한 Technical Interview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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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오랜만에 재무 관련된 서적이 아닌 교양 서적을 들었었다. '맥킨지 논리력 사고' 그 때 상향식과 하향식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기초부터 차곡차곡 쌓아가며 완벽을 추구하는 방식과, 큰 그림에서 시작해 더 넓게 뻗어 나가는 방식.
며칠이고 곱씹기를 반복, 묘한 울림이 한동안 숨죽이던 나의 한 구석을 번뜩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상향식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있었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단계라도 빠뜨리면 무너질 것 같아,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흔들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나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그저 그 곳을 향해 쌓아 올리기만을 고집했다.
하향식 사고는 달랐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마치 넓은 곳을 향해 흐름에 몸을 온전히 맡기는 물길처럼. 두려워하지않는 마음.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배움을 쫓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좁은 길만을 고집하며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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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였다.
금융권 취업이라는 정답에 마음을 묶어두고, 다른 모든 길을 놓아버렸던 나. 내가 가진 가치와 잠재력은 그 이상이었는데, 단 하나의 길만이 답이라고 여겼던 무지. 그 강박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지나쳤는지. 하나의 답안에 얽매여 사고가 기능적으로 종속되어 버렸음을 실감했다.
이제는 천천히, 마음을 담아 사고의 틀을 풀어본다. 마음을 담은 사고가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어느 자리에서든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길이, 그렇게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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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에게 컨설팅이 찾아왔다.
금융권이라는 단일한 선로 위에 멈춰 있던 나에게, 컨설팅은 잠시 다른 풍경을 바라볼 여유를 주었다. 관련 없어 보이는 정보들 속에서 새로운 통찰을 끌어내는 ‘융합적 사고’—그 안에서 컨설팅의 본질을 엿볼 수 있었다. 흩어진 조각들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고, 복잡한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 그렇게, 나는 그 과정이 지닌 묘한 매력에 이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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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가능성과 방향성을 스며들듯 발견한다. 온전히 나를 담아낼 수 있는 지속가능 컨설팅의 길.
나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컨설팅. 그 파고드는 물길을 여기 기록에 남긴다.
금융권 디지털 전환에 앞장서면서 기술이 주는 무한한 기회와 한계를 깊이 체감했었다. 비할 데 없이 우수한 기술 의 시대 이제 세상은 인간만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가치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이해관계자와 장기적인 신뢰를 쌓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 속의 융합적 사고와 인지적 공감, 사회적 이해. 윤리는 인간이 가진 가장 고유한 힘으로 남아 시대를 이끌게 될 것이라 믿는다. 사회적 공명력을 끌어내기 위한 소통의 틈을 메우는 것, 바로 조용한 중재자 지속가능 컨설팅의 자리다. 대체되지 못하는 고유의 힘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주체적 방향성을 새롭게 마주하는 설렘을 느낀다.
John Defterios 교수님과 함께 아랍에미리트 정부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글로벌 에너지 문제와 지정학적 리스크, 그 실질적 위기와 대응 방안을 연구했었다. 변화를 학문적으로 탐구하며 그 이면을 파고드는 사람들, 직접 현장에서 맞부딪히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람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직접 마주하며, 나 역시 얻어낸 통찰을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화하고, 이 움직임에 기여해야 함을 느꼈다. 중동에서 목격한 ESG를 향한 진취적인 행보를 한국의 문맥으로 투영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업이자 효용 아닐까. 지속가능 컨설팅에 살포시 기대를 걸어본다.
지속가능성은 이제 비재무적 개념을 넘어 일상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비전에 머물지 않는다. 실재하는 목표, 구체적 지표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하지만 필연적이게도 재무적 성과와도 긴밀히 연동되고 있다. 그동안의 금융 경험이 지속가능성의 길에서 또 다른 동력이, 미래의 가능성이 되어주리라 마음을 피우며. 지속가능성과 재무적 성과의 경계에서 새로이 그려지는 길, 그 안에서 흐르고 흘러 나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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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깃들인 사고는 어디서든 배움의 즐거움을 만든다. 오늘도 좋아하는 마음을 위해서. 또 다른 기록이 될 내 선택을 믿어보기로 한다. 비록 나의 유영은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컨설팅, 이제 전속력의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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