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하데스타운 후기
2022.02.01 | Walter Kerr Theatre
브로드웨이 하데스 타운 관극하고 왔다!-
하데스타운은 정말 뮤지컬의 신세계다... 첫 막이 시작하고 내 귀에는 다소 자극적이었던 트롬본 솔로와 작고 단촐한 무대 구성을 보고 정말 이 뮤지컬이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1막의 끝을 달려가면서 무서운 속도로 전개되는 이야기와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인터미션 때는 일어날 수도 없이 감탄만 하며 있었다. 웅장하지 않고 서정적인 하데스타운만의 넘버들은 정말 여운이 강하고 길다. 한달째 나의 모닝 플레이리스트는 하데스타운. 멈출 수 없어!
하데스 타운만의 매력
1) 단촐한 무대구성
하데스 타운은 아주 최소화된 무대 전환으로 극을 전개해 나간다. 하나의 세트, 한 개의 하강 무대장치, 턴테이블 무대가 전부다. 평소, 드라마틱하고 다채로운 세트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단순한 구성이다. 극은 두가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데, 가난 속 예술을 쫓으며 살아가는 지상 세계 (재즈바)와 정체성이 지워진채 노동만 하며 살아가는 지하 세계, 하데스타운이다. 이 두 세계는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하강 무대장치와 조명으로만 구분된다.
구성 중 턴테이블은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턴테이블마저 없는 하데스타운이라면 조금 지루할 것 같은 정도. 변화 없던 무대가 오르페우스가 여정을 떠나며 돌아가기 시작하면, 마법처럼 숨겨져있던 큰 무대가 마음 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상상의 시작만으로 이 극은 정말 색다르게 다가온다. 극은 엔딩에 시작장면이 재연출되며 마무리 되는데, 이 마저도 돌고 돌아 제자리인 턴테이블 연출과 일맥상통하다니 이 마저 의도한 것인가 싶다!
작은 무대를 더 생동감있게 채우는 또 다른 요소는 1막 엔딩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조명장치. 대부분 지하세계 (탄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무대에 입체감을 불어넣는 이 조명활용은 정말 연출에 입벌리고 감탄하게 된다. 단촐하기 때문에 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하고 그래서 하나하나 더 의미를 가지고 눈에 담게 되는 무대다.
2) 파격적 유기성
하데스타운은 두 가지 영역에서 기존 뮤지컬의 틀을 파괴한다.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서 직접 극을 즐기며 이끌어가는 7인조 브라스 밴드. 관객들의 존재를 인지한채 극장 제 4의 벽을 허무는 극의 진행자 헤르메스.
브라스밴드는 미쳤다.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내 눈 앞에 보인다는 사실이 미쳤다. 나는 뮤지컬을 볼 때면 항상 피트가 궁금했다. 가끔 사이드 좌석에 앉을 때면 피트가 보일 때가 있는데, 괜히 극에 집중하다가도 곁눈질로 힐끔힐끔 보게 되고.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무대 위에 세션을 올려 주시다니. 음악과 극을 눈에 모두 담는데 이게 뮤지컬인가 싶고 아주 황홀하다. 브라스밴드 세션 분들도 무대위에서 너무나도 자유롭고 또 여유로워 보인다. 재즈음악처럼 즉흥연주도 가미된 것 같은데 이 마저도 연출이었다면 뒤집어져야지.
하데스타운은 내레이터이자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헤르메스는 극에만 머물지 않고 아주 활발하게 관객과 소통한다. 마치 극과 관객석 그 사이 0.5단계에 머무는 역할이랄까. 호응을 유도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관객들이 잘 집중하고 있는지 눈도 마주친다. 이 독특한 캐릭터 설정으로 하데스타운은 관객들마저도 무대 속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느껴지게 한다. 씨어터 안 모든 존재들이 함께 호흡하며 이야기가 꾸려지는 기분이랄까. 1막 시작과 2막 시작을 알리는 넘버 Road to Hell과 Our Lady of the Underground에서는 각 헤르메스와 페르세포네가 나와 직접 등장인물들과 세션을 소개시키기도 한다. 배우라는 정체성을 자각한 극 중 인물들이라니 정말 파격적 유기성이 아닌가.
3) 서정적인 넘버
하데스타운의 넘버들은 웅장하지 않다. 아주 서정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하데스타운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탁 트일정도로 오픈되고 해상력 높은 음색을 좋아하는데, 하데스타운은 조금 밸런스된 소리들로 구성되었다는 느김을 받았다. 디테일보다는 숲을 중시하는 넘버들이랄까. 그래서 개인적 취향에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부담없이 듣기 편하고 자주 찾게되는 것 같다. 여러모로 하데스타운은 새로운 취향을 많이 발견한,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겸손하게 만든 작품이다. 하데스타운은 신화에서 리라를 즐겨 연주하는 오르페우스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 다양한 현악기 소리를 들려준다. 악기만 봐도 짐작이 가겠지만 넘버들이 그야말로 서정의 끝판왕, 주목할만 한 넘버들은 Epic과 Waiting for You다. 넘버들은 전반적으로 포크음악, 경우에 따라 재즈, 블루스, 인디팝이 가미되었다고 하는데 장르와 상관없이 정말 부드럽고 편안하다. 하루 온종일도 들을 수 있다.
4) 성스루 뮤지컬
기존에 관극했던 성스루 뮤지컬에 <노트르담 드 파리>가 있었는데, 노래로만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다소 힘겨운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하데스타운은 정말 성스루가 정말 잘 어울린다. 조금 더 몽환적이고 황홀한 분위기가 가미된달까. 또 노래들 자체가 시적이고 아름다워서 극의 이야기와 이질감없이 어울린단 점도 한 몫하는 것 같다. 가장 좋은 점은 하데스타운 넘버 전곡 듣기를 통해 끊김없이 마음 속에서 이 뮤지컬을 백번이고 다시 재생할 수 있다는 점 :3
하데스타운 심쿵 모먼트
지금까지 전부 심쿵 모먼트들 아니였어? 하겠지만 내 맘은 그렇게 쉽게 쿵하지 않는다. (灬ºωº灬) 예술에 감탄하는 것과 최애를 덕질한다는건 엄연히 별개의 일 아닌가. 하데스타운에서 나의 심쿵 모먼트는 하데스였다. 지하세계를 통쨰로 울릴 것만 같은 하데스의 목소리는 정말 심장을 파고든다. 사실 평소에도 베이스 악기 소리를 좋아하는데 깊은 울림과 함께 그 거대한 생동감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 귀에는 들리는 그 소중함도 좋다. 근데 사람의 저음까지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이야. 하데스역 배우 Patrick Page님 정말 내 베이스 원픽 등극이다. 다른 넘버들 최대한 아끼더라도 하데스의 Why We Build the Wall 넘버는 꼭 들어보길. 전주가 조금 길긴 하지만 정말 하데스를 사랑하게 될거다. 하데스를 귀에 꽂고 다닐 정도로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한국에서 하데스타운 라이선스를 사들여 뮤지컬 제작한다고 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게 하데스역 캐스팅이었다. 물론, 양준모 배우님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지만, 원작 하데스의 초초초초저음역을 놓친 것이 내심 아쉬웠달까.
알고보면 더 설레는 하데스타운
사실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를 반가움과 희열이 느껴진다. 뮤지컬의 특징 상 남성 인물들 위주로 극이 진행되기 마련인데, 유명한 남자 넘버들이 더 많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뭔가 주체적인 여성 인물을 소재로 한 극이나 그런 등장인물들이 나오면 애틋하고 마음이 더 간다. 그런 의미에서 하데스타운을 보는 내내 에우리디케와 페르세포네가 정말 와닿았다. 무력했던 신화 속 캐릭터 설정과 달리 앞장서 결정 내리는 모습들이 마음 속 답답함을 뻥 뚫어주는 느낌. 특히나 페르세포네는 정말 신선한 캐릭터였다. 계절을 기분 내키는대로 다루며 권력을 즐길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 사랑에 목메지 않고 하데스를 당당하게 마주하는 그 모습조차 그냥 너무 멋있었다. 끈적한 페르세포네 넘버들을 듣다보면 여신에게 이런 매력이 있다니 빠져들 것이다. 국내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의 마드리드 이후로 제일 마음에 쏙 드는 캐릭터.